여러분 안녕하셔요. 마야에요

뮤지컬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난한 학생이기에 매번 소공연이나 반값쿠폰, 공짜표로 만족했어야 했던 제가 생애 최초로 13만원을 모두 다!!!주고 VIP석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왔답니다. 그것도 티켓팅 오픈하는날, 수강신청보다 더 열심히 티켓팅을 했더라죠.
그리고 무려 한달을 넘게 기다렸던 뮤지컬, 바로 <닥터 지바고> 입니다. 사실 다른 뮤지컬 같은 경우엔 꿋꿋이 참아냈습니다. 반값 쿠폰 올라오면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뮤지컬의 막이 내려간 것도 있고...그냥 원작으로 만족하자며 회피한 것도 있죠.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뮤지컬화 소식에 아 뭐지, 이 두근거리는 가슴은???
예, 저는 사실 러시아문학 덕후입니다. 굳이 러시아문학을 골라 읽은게 아닌데 제가 가슴깊이 담아둔 책들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것들이죠. <닥터 지바고> 역시 '보리스 패스터넥'이 쓴 러시아 장편 소설이었고 소설과 영화 모두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것을 뮤지컬화하는 것은 정말 저를 설레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뮤지컬 배우 홍광호 씨가 유리 지바고를 맡고 김지우 씨가 라라를 맡는 다는 소식에 대박 캐스팅! 이라고 절로 감탄하게 됐죠!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잠실에 위치한 샤롯데 씨어터에서 상영합니다. 역시 뮤지컬 관람하기에는 샤롯데 씨어터 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빵빵한 사운드에, 어느 위치에서도 잘 보이는 구조. 편안한 의자. 캬~ 모처럼 홍광호 씨의 얼굴을 맘껏 감상해주고 왔죵!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리고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보러 가실 분은 사전에 원작 소설까진 못읽더라도 영화는 꼭 감상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하다못해 대략적인 시놉시스 파악이라도...
저는 제 옆자리에 앉은 커플이 계속 보는데 서로 "저 사람이 남편이야? " "죽은거야?" 하면서 속닥속닥하면서 보길래 약간 신경이 거슬렸...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역으로, 원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1부에선 다소 지루하고 이해가 안갈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혁명과 사회,시대적 배경은 최대한 배제시키려고 해서 그런지 스토리 진행이 지나치게 급박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나름대로 꽤 신선했습니다. 와, 소설로는 몇백페이지 분량이, 그리고 영화로는 1시간정도의 분량이 15-20분만에 끝나버리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저게 뭥미?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실제 소설 <닥터 지바고>는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 지향국가를 수립하게 한 러시아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을 배경으로 전쟁 속에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사랑과 삶을 담았습니다. 혹자는, 영화만 보고 결국 <닥터 지바고>는 "불륜을 미화시킨 영화"가 아니냐며 비아냥 거리지만 그것은 영화를 만든 데이빗 린 감독이 소설 속 <닥터 지바고>에서 사랑 이야기 액기스만 쏘옥! 뽑은 것이랍니다. 영화는 영화니깐 말입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대와 민족을 달리하며 반복되어 왔습니다. 정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적으로 보며 이것은 '불륜'일 수도 있죠. 하지만 소설 <닥터지바고>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불륜이 아름답다가 아니라,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삶이 무참히 희생되는 가운데에서도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살아갔고 혁명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것이 핵심입니다.
영화는 약 3시간 20분으로 조금 지루하실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 특성상 이야기 흐름이 상당히 느리고 아무래도 1960년대 옛날 영화다보니 루즈한 감이 없잖아 있죠. 하지만 반대로 저는, 이 시대때 이정도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탄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베리아 설원 위로 썰매를 타는 라라와 지바고의 행복한 표정과 함께 흘러나오는 '라라의 테마' OST는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아버렸으니깐 말입니다.
영화와 소설을 다 보니깐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어요. 지극히 '무대'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과연 <닥터 지바고>를 어떻게 표현할까 말입니다. 단순한 한 인물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보면 러시아 전반적인 격동의 대서사를 다룬 것이니깐요.
결과는요? 정말, 소설과 영화, 뮤지컬 모두가 마치 비슷하지만 색다른 느낌을 주어 오히려 좋았습니다. 지루하지가 않았다는 거죠.
참고로 러닝타임도 장장 2시간 55분입니다. 금요일 7시 30분에 보고 10시 30분에 나왔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면 시베리아의 낭만을 꿈꾸게 됩니다. 사실 그들은 시베리아의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지만 설원을 달리는 기차를 보며 한번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아름답게 묘사됐고 촬영됐기 때문입니다. 저도 <닥터 지바고> 때문에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겨울은 추워요)
유리지바고와 라라가 사랑을 나눈 유리아틴과 바리키노를 가는 게 목표죠!
그런데 이렇게 낭만을 꿈꾸게 한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은 뮤지컬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그저 스토리 흐름에 급급한 나머지,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기 보단 그냥 시베리아는 이동장소로만 보여지고 집과 집 이동으로만 보여지는 배경이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하다못해 눈뿌리는 효과라도 썼더라면 좋았을걸, 그저 배우들의 털코트(?)와 모자로만 그 추위를 가늠할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 외에의 무대 장치는 좋았습니다. 오래된 벽돌 건물 등 시대상 재현한 무대장치와 의상들도 훌륭했고 무대 바닥 자체에 경사를 만들고 패턴을 넣어 깊이와 원근감을 강조했죠.
이후 총상입은 병사가 남긴 편지를 읽던 유리와 라라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전쟁터에서 ('Now'), 스스로 적색파가 된 군인들을 실은 기차로('Blood on the snow'), 공산단원이 점령한 그로메코 가의 저택으로 연이어 전환되는 무대 역시 속도감이 넘칩니다. 다이나믹하게 무대가 몇번이나 바꼈는지 모르겠어요. 오토메이션으로 움직이는 네쌍의 무대 벽과 극 중 시대를 기록한 영상을 활용하기 위한 샤막, 철도 플랫폼 세트 등이 다이내믹한 장면 전환을 도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 배경연출력이면 시베리아도 그럴듯하게 연출할 수 있었을텐데요.
독특한 점은 앙상블 배우들이 소품을 자체 이동해서 이용한다는 겁니다. 의자에 앉는 신이면 암전된 상태에서 의자를 가져다 두는게 아니라 노래를 하며 의자를 들고나와 앉아서 연기를 하는 식이죠. 시선의 흐름을 깨지 않는 자연스러운 동선이라 그렇게 어색하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 역시 너무 좋았습니다. 홍광호 씨야 원래 그 폭발적인 가창력을 익히 들어알고있었고 정말 불편함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색이었습니다. 라라 역할인 김지우 씨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해내더라구요. 사운드 처리도 잘되어있어 정말 편하게 잘 들었고 그들의 연기 역시 크게 빠질 것없이 훌륭했습니다.

8세의 나이에 고아가 된 유리 지바고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막은 올라갑니다. 러시아 시대의 대서사를 다룬 작품인만큼 스크린으로 역사적 배경이 자막으로 표시되고 이후 사건이 전개됩니다.
고아 유리 지바고는 바로 그로메코 가에 입양되고 토냐와 결혼 후 제 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해 간호사로 합류한 라라와 재회하고 볼셰비키 혁명 정부가 수립된 후 모스크바를 떠나 토냐의 고향 유리아틴 행 열차에 오르는 순간까지. 13년에 이르는 세월이 축약돼 숨막히게 전개됩니다. 특히 유리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부터 라라가 자신의 정조를 뺏은 코마로프스키를 죽이기 위해 파티장에 찾아와 총을 쏘고 유리를 만나기 까지의 첫 신은 영화에선 1시간 정도 진행됐던 건데 뮤지컬에선 10분안에 휙 지나가버리니 처음엔 이게 뭥미? 했죠.
2막은 역사적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1막과 달리 각각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라라가 정조를 이미 빼앗긴 사실을 알고 격분해 사회 혁명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파샤는 적색파의 우두머리가 돼 라라의 순결을 빼앗았던 부르주아 코마로프스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그만의 사랑방식입니다. 코마로프스키 역시 강제로 그녀를 취했지만 마음 한켠에 라라를 잊지 못하고 있죠.
그녀의 팜므파탈과 같은 치명적인 매력 때문일까요? 결국 그녀를 사랑했던 세 남자가 모두 불운한 삶을 살았으니깐 말입니다. 파샤는 사회를 혁명으로 바꿔야한다는 급진주의자였지만 결국 이후에, 사랑도, 혁명도 실패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지바고 역시 라라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고 지병인 심장이 그를 생을 마감시켰죠. 코마로프스키 역시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2막에서 무엇보다 주의깊게 바라보아야할 장면과 테마OST는 'It comes as no surprise'입니다. 바보같이 착한 유리의 아내인 토냐가 유리지바고가 실종한 이후에 그의 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라라를 맞닥뜨렸을 때, 차마 화를 내지못하고 오히려 이해를 하며 서로 노래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뮤지컬 중 가장 관객들에게 심금을 울릴 수 있는 테마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만, 사람마다 취향이 있으니. 그 이후에 혁명의 잔인함과 환멸을 느낀 지바고가 빨치산 부대를 탈출하며 부르는 'Ashes and Tears', 유리와 라라가 마침내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는 듀엣 'On the Edge of Time' 등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곡들이 잔뜩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결코 '불륜'을 미화한 뮤지컬에 불과한 게 아니에요. 사회의 격동기에서 두가지 인물상을 엿볼 수 있죠. 뮤지컬 극 중 대사중 파샤가 결국 쫓겨 유리의 집에 찾아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생각나는 대사가 있습니다. (서로 수배중인 상황이죠)
"국가의 적(敵)인 두사람이 고귀하신 지바고 가문의 부르주아와 역무원 아들이 똑같은 신세에 놓여있으니...하하, 내 혁명은 성공한 것인가?"
이쯤봤을 때 관객들은 파샤를 단순 미워할 악당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파샤는 사회를 혁명을 통해 변화시키고자 하는 급진적인 사람이었다면 유리 지바고는 '아름다움'만 보고 싶어하고 시를 쓰고 싶어하는, 혁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지만 혁명에 대한 책임을 방관하고 회피하려는 지식인층입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지극히 모범생으로 자라왔던 그 였기에 소극적으로 사회 변화에 참여합니다. 그 방법이 의사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거죠.
너무나 모범생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내 토냐와의 결혼으로 고유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던 지바고. 하지만 그의 질서를 흔들어놓은 라라.
가족을 찾는 지바고에게 라라가 노래부르면서 쳤던 대사 중 생각나는 게 있네요.
"당신이 토냐와 결혼해 기존에 가져왔던 질서를 그대로 유지시킬려고 했던 것처럼
저 역시 파샤와 결혼해 저를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로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우린 서로를 만났어야 했어요"
그들의 사랑은 유죄인가요. 무죄인가요. 뮤지컬에서 한없이 착한 라라로 보였던 그녀가, 대사로만 보면 남의 남자 유혹하는 악녀로 보이니 원. 이래서 직접 보지 않고서야 말로 설명이 안되죠.
ㅎㅎ 어쨋건 결론은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한번쯤 꼭 볼 가치가 있는 대작 뮤지컬이라는 겁니다.
* 다른 한편으로도 주지훈씨의 성대결절로 뒤늦게 캐스팅된 조승우 씨의 유리지바고도 궁금하군요:D
'라이프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리뷰 * 말도 안되는 나라의 말이 안되는 영화라서 재밌는 '스탠리의 도시락' (0) | 2012.03.30 |
---|---|
[영화 아티스트] "이건 유성영화로 제작됐어도 대박이야" 절대 지루하지 않은 무성영화. <아티스트> 리뷰 (0) | 2012.03.06 |
[뮤지컬 에비타 리뷰] Don't cry for me argentina, 이보다 더 상세할 수 없는 에비타 리뷰. (1) | 2012.01.17 |
[19금연극/대학로연극] 코믹한 19금 연극의 대명사, <극적인 하룻밤> (2) | 2011.09.30 |
[피맛골/사극 뮤지컬] 피맛골에서 울려퍼지는 사랑의 노래, <피맛골연가> (0) | 2011.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