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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문화

[피맛골/사극 뮤지컬] 피맛골에서 울려퍼지는 사랑의 노래, <피맛골연가>


비가 오면 유독 잘되는 장사가 있습니다.
우산장사죠...............가 아니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것~


캬~ 막걸리와 잘어울리는 것은 다름아닌 빈대떡입니다. 특히 종로하면 빈대떡이 생각나곤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피맛골 빈대떡은 명물로 자리잡을 만큼 인기입니다.


피맛골은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길을 일컫는데요. 과거 조선시대 말을 타고 종로대로를 지나던 벼슬아치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싫어 평민들이 피해 다니던 길이란 피마(避馬)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제가 뜬금없이 피맛골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냐구요?
왜냐하면 오늘 피맛골 맛집 포스팅................................을 할건아니구요. 
피맛골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공연이 있기에 그에 대한 리뷰를 위해 피맛골에 대해 잠시 곱씹어보았습니다.



오늘 소개시켜드릴 뮤지컬은 <피맛골연가>입니다. 서울의 이미지를 세계 속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컨텐츠의 양산을 위해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만든 서울대표 창작 뮤지컬 첫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2010년 초연으로 5회 뮤지컬 어워즈에서 '작사/작곡상', '조명상', '음향상'의 3관왕 이외에도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공연명: 피맛골 연가

공연일시: 2011년 8월 23일~ 9월 10일
공연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박은태, 조정은, 양희경, 박성환,선영,임현수 
관람시간: 150분 (인터미션: 15분) 




특히 살구나무 혼령인 행매역엔 우리가 TV에서 많이 보아 익숙했던 양희경씨였는데요. TV에서도 주로 푼수 아줌마 같은 역할이었는데 이 공연에서도 그 비스무리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반가웠어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각각 더블캐스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조정은·선영(홍랑 역), 박은태·박성환(김생 역)씨입니다.
역시 빵빵한 캐스팅입니다.

                                        세종문화회관 Ticket Office에서 티켓팅을 마치고 인증샷~ R석이에요


한쪽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포토월이 마련되어있어요. 사람들이 많아 줄지어서 사진찍는 통에 1장밖에 못찍었네요.
(이것도 어둡게 나와서 늉무리ㅠㅠ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살구나무 정령이 들려주는 이야기


뮤지컬 <피맛골연가>는 액자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몇천년동안 피맛골 한 자락에서 봄이 되면 꽃을 피워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던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가 현대에 들어와 '재개발'이란 명목 아래 둥치만 남게 됩니다. 그 행매가 옛날에 이런 일도 있었지...하면서 기구한 김생과 홍랑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대략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시대 한양 운종가 뒷골목 ‘피맛골’에 김생이란 자가 있었다. 서출(庶出)인 김생은 늦도록 장가들지 못한 채, 골목 어귀 살구나무 주막 뒷방 한 칸을 얻어 홀로 지낸다.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를 지녔지만 타고난 신분 때문에 제 뜻을 펴지 못하고 떠돌던 김생은 피맛골에 들어와 골목 안 사람들의 대소사를 돌보아주고 그들의 호의 속에서 함께 지낸다. 어느 날, 김생은 친구를 돕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거벽(대리시험꾼) 노릇을 하게 된다. 김생이 대신 시험을 쳐 준 안국방 홍생은 과거에 장원급제한다. 홍생은 유가행렬 도중 길을 막는 피맛골 살구나무를 베려 한다. 김생은 홍생의 오만함에 분을 참지 못하고 나서 자신이 홍생 대신 과거를 치른 사람임을 밝히며 그를 비웃는다. 격노한 홍생은 김생을 미치광이로 몰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 한다.


 


홍생에게는 아리따운 여동생 홍랑이 있다. 홍랑은 오빠 몰래, 광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김생을 꺼내어, 자신의 별채에 숨겨두고 그를 돌본다. 홍생은 도망친 김생을 찾아 도성 안을 이 잡듯 뒤지지만, 제 동생 홍랑이 그를 숨겨두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별채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홍랑과 김생은 서로에게 점점 이끌리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홍랑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빠 홍생의 뜻에 따라 권문세가에 시집을 가야 할 처지가 되는데..."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위의 시놉시스를 보면 집안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사골뼈 우려먹듯 많이 우려먹은 설정이기에 1부에서는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다 똑같은 연애 이야기지만 이 뮤지컬이 유독 독특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적인 美가 제대로 담겨있는 뮤지컬'이라는 겁니다.

 



한국적인 색채와 리듬이 모두 살아있는 뮤지컬


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국문학을 부전공하는 것도 '한글 표현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됐기 때문이죠. 때문에 한국적인 색채와 리듬, 정서를 모두 갖췄던 뮤지컬 <피맛골연가>에서 아름다움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흔히 국악은 젊은이들에게 '지루함'의 대명사로 정평나있습니다. 간혹 세계 유명 일간지에서 '한국 사물놀이 극찬'에 관한 기사만 나오면 똘똘 뭉쳐진 애국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외치곤 하지만 정작 국악 공연을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외국에서 오히려 알아주고 정작 우리는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토록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국악이 <피맛골연가>에서 해금,피리,태평소,가야금 등과 오케스트라를 퓨전시켜 상당히 흥겹게 편곡이 됐습니다. 우리의 정서뿐 아니라 그 세련된 멜로디는 국제적인 감각까지 조화롭게 끌어올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한국적인 감각이 고루 묻은 시적인 가사 역시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특히 남자주인공 김생을 청아한 푸른색과 고고한 학의 이미지로 그려냈던 1막 끝부분에 나오는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라는 넘버는 주인공의 쓸쓸함이 가장 잘 표현된 가사이며 리듬이 담겨있습니다.

"잊기 위해 꿈을 꾸고 꿈을 팔아 혼을 사고, 혼을 팔아 술을 사고, 취하려고 꿈을 파네"
라는 이 한줄의 가사는 김생의 삶과 그의 속마음을 모두 비춰주죠.



그 외에도 마지막 장면에 두 연인의 애절함을 극적으로 표현해 심금을 울린 듀엣곡 뮤지컬 넘버 '아침은 오지 않으리'는 이 극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만났지만 곧 헤어져야하는 안타까운 심정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그 모양은 보는 사람으로, 그리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아프게 만드는 뭔가가 가득했습니다.



그외에도 살구나무 꽃이 피면 수많은 남녀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몰래몰래 사랑을 하려는 심정을 재치있게 표현해 신명을 이끌어내는 '피맛골', 감칠맛 나는 '모던 스타일 파라다이스' 등 꽤나 매력적인 넘버들을 선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극뮤지컬에선 보기 힘든 다채로운 춤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한국무용뿐 아니라 힙합, 재즈댄스,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매치했는데요. 특히 행매가 등장할 때 그 섬세한 나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세청년의 아크로바틱한 몸짓은 꽤 주목할 만합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무대와 의상, 그리고 환타지

 



<피맛골 연가>는 여러 시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처음 행매가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은 종로의 피맛골 재개발을 앞둔 현대의 시점이죠. 그리고 홍랑과 김생의 이야기를 위해 머나먼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시간이 흘러흘러
버스안내양이 존재하던 시절인 1900년대 초의 피맛골까지 나오는데요.


턴테이블을 통한 빠른 배경전환, 그리고 퀄러티 높은 무대와 우상은 꽤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의상 역시 기존 한복의 아름다운 색감과 형태에 현대의 모던함을 더했고 매 장면마다 각 시대에 맞는 의상들을 재현해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특히 1900년대 초, 버스안내양이 있던 그 시절의 복고풍 의상은 꽤나 인상이 깊습니다.


<피맛골 연가>에서 뮤지컬 캣츠를 연상시킬만한 장면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아마 <피맛골 연가>에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독특한 개성을 잘 살렸다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면 상상이 가시나요? 사극 뮤지컬엔 왠 캣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캣츠가 고양이들의 대화였다면 <피맛골연가>에선 흔히 '서생원'이라고 묘사되는 쥐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1부에서 진부한 사랑이야기로 살짝 피곤함을 느꼈던 관객이었다면 2부에서 쥐들이 나오는 시점부터 잠이 번뜩 깰 것입니다. 그만큼 흥미롭고 코믹하며 퀄러티가 높은 장면입니다.


쥐들로 인해 두 연인의 만남, 그리고 아침이 오기까지의 그 과정은 이 극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1부가 뻔하디 뻔한 로미오와 줄리엣형 스토리라고 한다면 2부에선 그 스토리를 독창적으로 휙 전환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1부에선 다소 느리게, 2부에선 정신없을 정도로 빨리빨리 진행됩니다

아름다우면서 재미와 감동을 모두 놓치지 않는 <피맛골 연가>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해서 지루함을 걱정하실 관객도 꽤 될 겁니다. 더군다나 왠지 심각해보이는 사랑이야기고...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그저 아름답다는 것 하나로 그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수 있을까라고 우려할 수도 있습니다.
꽤 심각할 것 같지만 이 남자주인공의 재치는 관객의 지루함을 달래줍니다. 오히려 능청스러운 이 남자주인공의 말장난에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뮤지컬이라 생각이 됩니다. 수많은 외산 라이센스 뮤지컬이 난무한 가운데 우리 것이 제대로 담긴,
번역된 대사가 아닌, 한국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대사까지.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단순 시간적 배경만 바꾼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연출로 표현한 <피맛골연가>.
뮤지컬을 보시고 나면 아마 절로 피맛골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먹고싶단 생각이 들겁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공연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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