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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트렌드

나의 삶은… 베트남 쌀국수처럼 [빠리하노이]


열여덟 살과 스물 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 갔다.

 

매콤하게 추운 어느 날,

뜨근한 국물을 먹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들어서게 된 베트남 쌀국수 집.




대학로에도 이런 집이 있었나 싶게

제대로 베트남 느낌으로 꾸며진 식당이었다.

 

식당 안에 있던 TV화면에는

마르크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을 영화화 한 장 자크 아노의 동명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여성학을 공부하려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한다는 이 책을

서점에서 호기심에 뽑아 들었다가 어찌나 난감했던지……

 

1929년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가족들과의 문제가 있었던 프랑스인 소녀가

중국인 남자와의 광기 어린 사랑에 몰두하는 이야기라

 

순간적인 영상 이미지보다 오히려 문자 이미지가 더 충격이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던 이 이야기.
결국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소녀가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인상적이었는지 잘 적어두었더라.

살펴보자면 이러하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 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 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중략)

늙어 간다는 것은 가혹했다.

나의 늙음이 내 얼굴에 찾아와 내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고,

두 눈은 더 커지고,

시선은 더 슬픈 빛을 띠고,

입 모양은 더 고집스러워 보이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그런 변화에 진저리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내 얼굴의 노쇠 현상을

마치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는 것 같은 호기심을 품고 지켜보았다.

 



열여덟 살과 스물 다섯 살 사이

 

열 여덟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스물 다섯을 삼일 후면 보내야 하는 지금.

 

솔직히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 변화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저 뒷짐 지고 이 이야기가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하며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어떤 것이 예상한 것처럼 지속되지 못한 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몹시 불안했다.

 

변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지 어디에서 안정감을 찾아야 할지

나는 몹시 미숙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렇게 믿기 때문에 행복하다

 

벼랑 끝에 선 스물 다섯이 그런 이야기를 하자

연륜이 있는 언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렇게 믿기 때문에 행복한 거라고.

연인에도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

 



언젠가 식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따뜻하다

 

따뜻한 국물이 언제가 식을지도 모른다.

뜨거울 때 먹어버리면 그만이지 뭐.


 


변하는 것을 한탄만 하기에는 아깝다.

스물 여섯은 다섯 손가락을 새롭게 펼 수 있는 나이다.

 

변하는 것이 두려워 내 미래를 믿지 못하는 일은 그만 할 것이다.

내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에 지금의 내가 행복하니까.

 

따뜻한 국물이 정말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