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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후원 나눔톡(Talk) 콘서트 1탄] 춤추는 사진작가, 강영호 씨의 사진 인생 이야기.



"스타들, 귀족병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Commercial Photographer로도 꼽히는 강영호 사진작가가 최근 이 발언으로 화두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특정 스타를 비꼰다는 의도보단 어떠한 작업을 하던간에 스타들이 상위계층에, 사진작가는 그 아래 계층에서 머물러야 하는 불공평한 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 하는데요. 갑자기 강영호 사진작가는 왜 언급하냐구요?
 


 두둥!
지난 2월 23일,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이 주최 및 LIG 손해보험이 후원한 '나눔톡(Talk) 콘서트'의 강단에 선 인물이 바로 이 사진작가 강영호 씨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특별히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홍보대사로 강영호 사진작가가 위촉되기도 한 기념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짬 좀 된다는 사진작가들은 해외봉사 좀 다녀온다길래 겉멋에 떠났던 해외봉사가,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고 그 후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며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눌 지 궁금해졌습니다:D.
그래서 우리 LIG 7Days의 은비언냐와 함께 고고씡~



캬, LIG 손해보험 서포터즈 아니랄까봐 이런건 빨리 발견! 
강연을 들으러 오신 모든 분께 '새싹씨앗화분'을 드리고 있었어요. LIG에서 후원한다고 똬악! 박혀있죠! 
"LIG의 착한 나눔"  


그 옆에는 이렇게 포토월이 위치해있었죠. 다소 어둡게 찍혔어요 ㅠㅠ.
이건 저희 사진기로 찍었는데 거기 담당자 분께서도 따로 찍어주시더라구요.
호기심이 생겨서 "이거 어디에 올라가는거에용?" 하니깐
 "음..LIG 블로그에도 올라갈수있고.네 뭐,,,"

"저희가 LIG 블로그 서포터즈에요~~"
하니 아 그러냐며 웃으시더라구요. ㅎㅎ

 


 

 어머나..LIG에서 왔다고 하니깐 자리도 맨 앞자리...그야말로 VIP석에 앉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LIG 손해보험 광고도 찰칵.

지금부터 포토그래퍼 강영호씨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다

 
춤추는 사진작가인 이유는 말그대로 사진을 찍을 때 춤을 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춤이 나올 정도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찍어야 진정한 사진이 나온다는 그는, 얼핏보면 괴짜 사진작가 같기도 하다.
 


긴 머리를 질끈 묶어 영락없는 '아티스트'적인 비쥬얼을 풍기며 등장한 그는 앞서 자신을 "대한민국 최고의 사진작가"라고 소개했던 사회자 멘트에 멋쩍어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최고였던 건 지나갔죠, 잠깐 최고였던 적이 한 1년간? 그 이후 7-8년이 지났습니다"


 흔히들 유명한 연예인 사진은 쉽게 알아보지만 그 사진을 찍은 by.photographer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강영호 사진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기전, 우선 자신이 찍은, 소위말하는 '돈을 벌게 해주었던' 사진들 포트폴리오를 꺼냈다.


처음 전지현 사진을 보자마자 청중들이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 전지현의 최전성기시절, 그녀를 가장 섹시하면서도 아름답게 찍은, 이 유명한 사진을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강영호 사진작가란 걸 이제서야 알게됐다.


그 외에도 정우성, 배용준, 장동건, 이효리, 손예진, 차인표, 조승우, 한가인, 이준기 등 국내에 내노라하는 모든 스타들이 그의 카메라 앞을 스쳐갔다. 그 유명한 지오다노 광고와 2% 광고 작품 역시 강영호 사진작가의 그것이었다.


'인터뷰'라는 영화의 포스터촬영을 시작으로 그는 파이란,선물 , 단적비연수, 커밍아웃, 시월애, 하루 등 100여편의 영화포스터와 약1200편의 광고사진을 찍었다.


5분여간, 잔잔한 음악과 함께 그의 포트폴리오를 감상한 후 비로소 그는 본격적으로 입을 뗐다.

"저는 오늘, 제가 사진작가가 되기까지의 인생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 가장 상업적이면서 예술적인 사진작가, 강영호.


 

 

 

그는 사진작가지만 사진을 공부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반에서 6~7등 정도하는 성적에 맞춰 홍대 불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딱히 학문에도 뜻이 없었고 뭐하나 잘한 것이 없었다. 나는 무엇이 될까? 미래가 암담한 그 불안감을 그는 애써 회피하려 연애로 돌렸다. 연애에 집착함으로써 불안감을 잠식시키려 했다는 그는 농담조로 "애인한테 집착하는 사람있으면 분명 자기 미래에 대해 불안한 사람일걸요?"라며 사뭇 진지하게 흘러가는 이 장(場)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바꿨다.

어쨋건 그는 여자친구에게 집착했다. 해달라다는대로 해줬고 여자친구에게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우연히 여자친구 사진을 찍어주었고 여자친구의 "너 천재아니야?"란 말에 그는 사진을 시작했다. 다른 아무 이유도 없었다. 단지 "칭찬받기 위해서". 그것이 그가 사진을 처음 시작한 이유다.



사진이 목표가 아니었고 사진은 그저 수단이었다. 친구들이랑 재미삼아 사진을 막 찍다가 그의 소질을 일찍이 알아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청바지 브랜드 <닉스>와 처음으로 작업하게 됐고 슬슬 일거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는 실연을 당했다. 그가 사진을 해야할 이유를 잃었다.

이상하게도 실연이후, 그녀가 여자친구에게서 들었던 칭찬과는 다소 질이 다른 칭찬들이 들어왔다. 불특정다수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며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 사진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러다 영화 <인터뷰> 포스터 촬영을 하게 됐고 자연스레 그는 사진작가의 문턱을 밟아 서게 됐다.

 

이제 "칭찬"에서 사진을 하는 이유가 바꼈다. 돈, 명예 그리고 유명인과의 친분. 그때까지도 그에게서 사진은 예술이라기 보단 그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지극히 쾌락적이고 세속적인 이유에서 그는 사진을 했다.


그러다 언젠가 명예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명예야, 어차피 사람들은 그가 찍은 유명인사들을 기억하지, 사진작가 강영호를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필요없어졌다. 유명인과의 친분 또한 진정이 아닌 허(虛)한 관계란 것을 느꼈고 슬슬 예술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 예술을 하고 싶단 생각도 단순했다.
"사진보면 유명 예술가 사진이 또 돈을 엄청나게 벌거든. 작품 한개에 몇천만원, 몇 억이 호가하니깐"

슬슬 예술을 해야겠다 했지만 그만의 예술 철학을 정립할 필요성이 있었다. 스스로 정했다.
"예술이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극단의 무언가"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춤을 미친듯이 더! 추기 시작했다. 바퀴달린 의자를 도입하고 사진과 춤을 본격 예술화 시키고 싶었다. 살을 한달만에 15-20kg 뺐다. 머리도 기르기 시작했다. 단지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고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온 것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상사진을 모아 꾸민 그의 첫 순수예술사진전 99 varation' 작품들이다. 그로테스한 모습부터 여성스런 모습까지 99가지 모습으로 분장한 작품 속 그의 모습은 몽환적이면서도 고독해보였다.

 



그의 순수 첫 예술 사진전을 가진 후 한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강영호씨, 그럼 상업사진에서 예술사진으로 전환한 겁니까?"
그는 답했다.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의 확장이지, 전환이 아닙니다."

3. 모순과 그 공존에서 나오는 상상력, 그것이 곧 원동력


"가장 상업적이면서 예술적인 사진작가"
 
흔히들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 말을 뜯어보자. 상업적이면서 예술적이란 말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모순이다. 강영호 역시 자신을 "모순이 가득한, 그리고 그 모순들이 공존할 수 있었기에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사진작가.
지극히 세속적인 이유로 사진을 시작한 아티스트.
격한 춤을 추면서 정적인 사진을 찍는 춤추는 사진작가.
...

그의 삶은 정리되지 않았다. 서로 어울리면 어색할 것 같은 요소들만 잔뜩 모아놓았기 때문에 색다른 그 만의 상상력이 나올 수 있었고 표현할 수 있었다.


앞서 그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유로 사진을 했다. 그런 그가 변하게 된 계기는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였다. 으레 사진작가가 어느정도 위치가 되면 해외봉사가서 좀 좋은 사진찍는, 흔히 '겉멋'들어 그 역시 봉사를 떠났다. 당시에는 딱히 진심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사진찍고 한국에 왔는데 그제서야 사진을 보니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 회의가 들었다. "난 왜 현장에서 느끼질 못하고 항상 후속 사진으로만 느끼게 되는가"

비로소 그는 '겉멋'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진으로 '나눔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는 현재 또다른 감동의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름 아닌, 시각장애아동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 다는 것 자체가 고개 갸우뚱할만한 일이다. 아니, 무얼보고 사진을 찍는 다는거야?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순수 소리와 향기에만 의존해 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강영호 사진작가가 탐낼만한 엄청난 것이었다. 귀를 갖다대고 사진을 찍는 아이들. 그냥 찰칵찰칵 찍는 그 순간이 왠만한 사진작가의 수준을 넘어선다고.

"부끄럽죠. 저는 눈을 갖다대고 아무리 열심히해도 그만한 사진이 안나오는데 이 아이들은 마음의 눈으로 사진을 찍는겁니다. 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배우고 싶어서, 계속해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난 후 누군가 물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이성적으로 사진을 찍지말고, 직관적으로 찍어보세요. 저처럼 춤추면서 기분내킬 때 찍거나, 시각장애아이들처럼 눈과 코에만 의지한채 직관적으로 찍는거죠. 마음 가는 대로 찍다 보면 그것이 곧 좋은 사진이 될 겁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상업작가이자 예술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