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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문화

트루먼인 시청자에게 어느날,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진다면. - 영화 <트루맛쇼>를 보고오다.

개봉전부터 적나라한 3사 방송국 맛집 프로그램 고발로 인해 큰 화제가 됐던 페이크 다큐 영화 '트루맛쇼'를 오늘에서야 보고 왔습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수원 근처에는 상영관이 없는 관계로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강남 신사역에 위치한 인디플러스에 다녀왔는데요.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비를 뚫고 가느라 상영관에 도착하니 물에 빠진 쥐꼴이 되어서 내가 영화를 보러온건지, 비를 맞으러온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자극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 TV 음식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파헤친 고발 다큐멘터리입니다. 트루맛쇼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MBC PD로 방송일을 시작후 외주제작일을 시작했는데요. 일종의 전직 PD가 고향을 향해 날린 카운터펀치와 같은 이 영화는 '맛집'을 통해 '미디어'의 부조리함과 위선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Frode & Inganno로 이뤄진 거대한 'PPL'




방송인 남희석 씨는 과거 처음 가보는 맛집을 스타맛집이라 칭해 소개한 적이 있는 자기 반성적인 기고글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양심고백인 것입니다. 이처럼 맛집프로그램의 흔한 포맷으로 나오는 스타맛집은 '스타가 자주가는 맛집'이 아닌 '스타에게 홍보를 부탁하는 식당'으로 변질됐습니다.

"조작이 이탈리아어로 무엇인가요?"
"Frode입니다"
"그렇다면 기만은 이탈리아어로 무엇인가요?"
"Inganno..."

'Frode&Inganno'란 간판을 단 식당에 한 유명 방송인이 나와 맛집으로 소개합니다. 처음보는 음식을 마치 평소에 먹어왔던 음식처럼 소개합니다. 음식 이름이 어려워 이름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자 작가가 대놓고 대본을 써주고 주요 특징을 실시간 써서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입니다.



조작과 기만이란 간판을 단 식당을, '조작과 기만'을 통해 방송으로 내보내 전국민을 '조작과 기만'하고 있는 풍경인 것입니다.  
교양프로그램이라는 맛집프로그램마저 이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 타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 맛집 조작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에 입각해 교양정보를 제공해야할 방송사들이 막대한 수신료를 받으면서 기나긴 조작된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스타가 자주가는 맛집이 아닌, 스타를 섭외해 맛집을 만들어가는 조작의 과정을 보면서, 그리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그럴듯하게 연기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래서 방송은 100%믿을 것이 안되는구나 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거죠.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가 맛집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트루먼쇼'에선 짐 캐리의 부인이 어색한 포즈로 코코아를 권해 의심을 사게 되는데요. 이 때의 코코아 역시 PPL이란 이름으로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는 것입니다. 또한 짐 캐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역시 준비된 배우 였고 짜여진 각본에 의해 죽거나 사라지곤 합니다.
'트루맛쇼'에서 연예인 뿐만 아니라 돈벌이가 궁한 주부들이나 여대생 등의 일반인들에게 '맛의 연기'를 부탁하는 것도 볼만 했습니다. 뜨겁지도 않은데 매우 뜨겁게 연기하라는 등, 맛도 없는데 맛 있다고, 처음 오는데 자주 오는 집입니다 라고 그들을 연기지도 하는 것으로 보면 실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나왔던 PPL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보이는 지나친 PPL마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맛집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거대한 PPL이었고 쇼였던 것입니다.

*PPL(Prouduct in Placement): 제품 간접광고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정 상품을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도구로 이용해 일종의 광고 효과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0년 1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허용되며 방송 전체 시간의 5%, 화면크기 1/4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브랜드 노출이 가능해지는 등 PPL의 허용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이로서 드라마 상에서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로고를 가리지 않은 채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됐다, 방송사가 만드는 맛집 메뉴

단순 홍보뿐만이 아닙니다. 경악할 것은 맛집의 메뉴를 방송사에서 직접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전파를 탄 '캐비어 삼겹살' 역시 독특함과 방송에 나올만한 컨셉을 창출하기 위해 한 브로커가 개발한 아이템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브로커가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식당의 사장님으로 등장했다는 겁니다. 캐비어 삼겹살, 늙은 호박이 품은 해물찜, 매워서 죽든지 말던지 돈까스 등 실제론 긴가 민가한 메뉴를 당당히 내놓으며 그때 그때 "안어울릴 것 같 으면서도 ~의 단점을 보완해주면서 깔끔한 맛"이란 한결같은 대사를 준비된 출연자로 하여금 내뱉게 합니다. 영화제작진들이 만든 식당 '맛(Taste)' 역시, 이러한 브로커에 의해 '청양고추와 캡사이신으로 범벅된 돈까스'를 만들어 맛집 프로그램에 나가게 됩니 다. 친한 지인으로 섭외한 일반인 연기자들 역시 "맵지만 중독돼 맨날 오게 된다"하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합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됐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지만 이것은 개척이 아닌 '조작'입니다. 식당이 존재하기에 맛집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맛집 프로그램이 존재하기에 식당이 존재하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트루먼쇼의 짐 캐리가 계속해서 바다를 건너 떠나고 싶어할 때 끊임없이 상사와 주변 사람은 이를 말립니다. "너처럼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다와 부모님의 죽음을 결부시켜 짐 캐리가 바다엔 얼씬도 못하게끔 만듭니다. 각종 바다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것은 물론이구요. 바다 끝에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마련되어있으니깐요.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방송사에서 요구하는 있지도 않은 요리를 만들어 방송에 내보낸 후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제 더이상 팔지 않는다"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합니다.
여러 맛집프로그램의 출연으로 인해 이제 베테랑이 되어버린 본 영화 연출진들은 중간중간 컷트마다 냉소적인 메시지를 보냅니다. 
맛집프로그램에서 내보내는 "깔끔한 맛"을 "MSG로 범벅된 조미료 맛"으로 말을 바꿔가며 실제 맛집과 방송사에서 연출한 장면을 조롱했는데요.  심지어 불만제로 등에서 '위생'문제로 걸린 식당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맛집'으로 포장돼 맛집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정말 코미디였습니다.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진다면?

'트루맛쇼'는 어느날, 트루먼에게 떨어진 조명과 같습니다. 무비판적으로 매체를 수용해온 시청자에게 미디어의 현실을 '맛집 고발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화 '트루먼쇼'의 한 장면.


영화 컷트마다 들려오는 시니컬한 내레이션은 방송사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그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교양과 정보를 기대하지 마라. 방송은 그냥 껌이다. 그냥 적당히 씹다가 뱉으면 된다. TV에 나오는 손님도 가짜, 스타의 단골집도 가짜, 메뉴도 가짜, 맛도 가짜로 채워지는 코미디 같은 가상현실이 반복되지만, 9시 뉴스는 방송의 공영성과 수신료의 가치를 역설한다"

조작과 기만으로 가득찬 방송을 100%믿으시겠습니까? 이제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방송 매체에 개입을 해야합니다.
항상 겉으로만 '공영성'을 외치는 위선함을 비판하고 정당하게 수신료의 가치와 진짜 '공영성'을 요구해야하는 것입니다. 이제 트루먼 쇼의 짐캐리처럼 바다를 건너 현실의 문을 열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