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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여행

[거문도 여행] 인생이 허기질 때 찾아가는 그 곳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남해 동부 먼 바다'에 속한 섬, 그 머나먼 바다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아름답게 키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곳, 다도해 최남단 거문도를 찾았습니다.





일상처럼 펼쳐진 바다





우리가 섬을 찾는 까닭은 현실과 뚝 떨어진, 바다를 향한 동경 때문이 아닐까요. 거리에 대한 기대, 공간에 대한 바람을 온전하게 해소해 주는 섬이 거문도입니다. 다도해 최남단, 전라남도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거문도에서 접하는 남해는 동해처럼 끝없고 서해처럼 다채롭다. 오가는 뱃길에 보이는 작은 섬들이 2시간의 여정을 지루하지 않게 합니다.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소설가 한창훈이 '엘지호, 엘지민박' 같은 식당 겸 숙소 앞 눈먼 벤치에 거짓말처럼 앉아있습니다. '巨文'이라는 섬 이름이 새삼스럽네요. 찾는 길은 섬 주민 누구나 붙잡고 물으면 됩니다. 걸쭉한 남도 말로 친절하게 알려준답니다. 묻지도 않은 맛집 가이드까지. 순박한 인심과 그런 섬의 분위기는 관광지 치고는 때 묻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장처럼 조금 허름하게, 적당히 빽빽하게, 매우 깔끔하게 들어선 건물과 골목은 섬을 찾은 즉물적인 이유를 잊게 할 정도로 다큐멘터리스럽네요. :)





숲길 바닷길 헤치고 등대 가는 길





배를 타든 조금 걷든, 어디서나 찾아갈 수 있는 거문도 등대는 이른바 관광명소에 대한 선입견, '정작 가보면 별것 아니더라' 따위의 잘난 생각을 단번에 날려버립니다. 1905년 첫 불을 밝힌 등대는 크고 멋있고 근사하네요!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또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등대지기의 거룩한 마음'까지야 헤아릴 수 없지만 저 등대에서 바라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바다의 극단이며, 그 극단에 도취된 여행자는 자연스레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삼호교와 유림해수욕장을 지나 목넘어에서 등대까지는 1.2㎞의 숲 터널을 이룹니다.







차분한 바다와 다르게 섬 자체는 상당히 역동적입니다. 바다와 직접 닿은 길이나 방파제를 제외하고 모든 '땅'은 언덕이거나 산입니다. 가파르지 않아 거친 숨을 몰아 쉴 일은 없습니다. 등대나 등대에서 보는 바다만큼 아름다운 '등대 가는 '을 비롯해, (특히 동도, 고도, 서도 중 가운데 위치한 고도의) 섬을 두른 길에서 잎맥처럼 들어가 있는 골목 어디서나 이어지는 뒷동산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








그 뒷동산에는 '거문도사건'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고종 때 이 섬을 점령했던 영국군의 흔적(무덤)도 있습니다. 섬 주민 중 한 명이 "이 무덤은 건너편 유곽(영국군 상대로 장사를 하려고 일본인이 만들어놓은 것)까지 헤엄쳐 가다가 빠져 죽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스무 살도 안 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말이죠"라면서. 마을 안 또 다른 뒷동산으로 향하다 보면 작은 경로당 크기의 절이 나오고, 절보다 조금 더 큰 교회가 나옵니다.







심지어 지금은 비공식 골프 연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일본인들이 지어놓은 '신사(神社) 터'도 나옵니다. 섬의 역사가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때 영국의 해밀턴항으로 불리었던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전기가 들어왔으며 테니스와 당구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섬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거문도 사람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하네요!





갯것 왕국의 저녁 만찬




거문도에는 섬답게 횟집도 많습니다. 그리고 낚시 명소답게 교통(배)과 숙식을 해결하는 음식점 겸 숙박업소인 민박집도 많습니다. 여행자라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글자 그대로 집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이 나오는데, 철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은 기본이 장어탕입니다. 전날 민박집 주인(이자 선주)이 직접 잡은 여수, 거문도의 명물 갯장어입니다. 간장에 절이거나 무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목이버섯, 따개비, 우뭇가사리, 굼벵이, 새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땅에 묻은 묵은지만으로도 밥 두 그릇이 뚝딱이랍니다. 직접 뜨거나 요리해 내는 제철 회, 특히 성격 급한 갈치와 '히라스'라 불리는 가을 방어가 압권입니다. 와사비 장 살짝 묻혀 우물우물 씹어 삼키면 갑작스런 호사에 오장육부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







동네를 걷다 보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잘라 말리고 있는 삼치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구워 반찬으로 냅니다. 거문도 밥상에는 글자 그대로 산해진미가 아주 스페셜하게 차려집니다. 거문도에 사는 소설가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는 거문도의 '갯것'들을 맛깔나게 먹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문도의 숨은 먹거리 볼거리


01


백도

02


번지횟집

03


고도민박

거문도 절경의 태반이 '다도해의 해금강'이라고 불리는 백도에 몰려있습니다. 백도를 보지 못하면 거문도를 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상백도와 하백도를 포함한 서른아홉 개의 무인군도로 이루어진 국가 명승지입니다. 거문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왕복 2시간에 백도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유람선 출항이 비정기적이니 계획 시 문의는 필수입니다.


문의: 061-690-2607

직접 잡은 활어만 취급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정갈한 음식 솜씨로 만들어내는 밑반찬이 일품인데, 모두 거문도 바다에서 나오는 재료로 간간하게 만들어 냅니다. 단연 거문도에서 갈치조림이 가장 맛있는 집으로 통합니다. 선착장에 내려 '번지네'라고 물으면 다 아는 맛집이랍니다.


문의: 061- 666 -8133

숙박만을 위한 단순한 민박집이 아닙니다. 90년 전통의일본식 다다미로 꾸며진 일본식 민박집이거든요. 일본 건축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집은 일제시대 여관을 주인 아주머니의 할아버지가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문의: 061-665-7288